라오스 소수민족 묘족(몽족)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남다른 친밀감이 느껴지는 소수민족 '몽족'
이글에서는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될 '몽족'에 대한 대서사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라오스에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라오스에서 몽족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나는 '묘족'이며, 다른 하나는 '몽족'입니다.
하지만 묘족 사람들은 '묘'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몽’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왜 그런지 천천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선 '몽족(묘족)'으로 칭하고, 중국의 몽족은 구별하기 위해 '묘족'으로 칭하겠습니다.
중국에서는 묘족을 "먀오족"으로 발음합니다.
몽족(묘족)은 중국에서 집계한 소수민족 중에 5번째로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입니다.
정확한 인구는 알 수 없지만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몽족(묘족) 인구를 다 합치면,
라오스 전체 인구(763만 명) 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몽족(묘족)은 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산악지대에 주로 살고 있으며,
또 다른 나라에도 많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니다.
이 중 라오스에 살고 있는 몽족(묘족)의 현재 인구는 315,465명입니다.
이 중 여성은 157,410명으로, 라오족과 크무족 다음으로 라오스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건,
몽족(묘족)들이 아시아를 벗어나 미국에 30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 15,000명, 호주 2,000명, 프랑스령 기아나 1,500명, 캐나다 600명, 아르헨티나 600명 등 세계 20여 나라에 약 2만 명의 몽족(묘족)들이 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몽족(묘족)들은 전통적으로 깊고 높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소수민족인 몽족(묘족) 사람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도 많이 살고 있을까요?
신기하고 미스터리 한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국제결혼이나 해외취업 때문이라 생각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몽족(묘족) 사람들의 흥미롭고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몽족(묘족)에 대해 하나씩 풀어가겠습니다.
몽족은 크게 세 분파로 나뉘며, 대표적으로 백묘, 화묘, 흑묘가 있습니다. 원래는 몽족의 의복은 색상과 무늬에 따라 분파가 구분되었지만, 현재는 몽족 각 분파의 의복이 다양해졌고 특정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옷으로 분파를 구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몽족들의 전통복을 보면 여러 형태의 전통복들이 섞여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몽족의 문자는 라틴 문자 체계와 묘족 출신의 류펑이 창작한 문자 체계 두 가지 체계를 따릅니다. 몽족의 신앙은 귀신과 신령을 숭배하며, 아버지의 성을 따릅니다. 대표적인 성씨로는 이(李), 라(罗), 양(杨), 탁(托), 하(何), 왕(王), 송(宋)씨 등이 있습니다.
몽족의 오랜 역사
묘족이 한국인에게 특별히 친근한 이유!
최근 화제가 되는 것이 소수민족 몽족(묘족)의 시조가 우리의 선조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고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요?
유전자와 DNA는 혼혈이 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져오기 마련입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실제로 몽족사람들의 외모가 한국인과 외모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여성이나 동남아 여성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한국여성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외모를 보면, 각 나라마다 고유의 얼굴 특징이 있습니다.
몽족(묘족) 여성들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여성의 외모와 거의 흡사하며 동남아시아에 살지만 피부가 하얗습니다.
묘족(몽족)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묘족(몽족)은 대단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단합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고산지대에서 산을 깎아 논을 만들 만큼 생활력이 강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조선족은 분명 중국인이지만 우리의 민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묘족(몽족)도 우리 민족의 뿌리일까요?
그 진실은 중국의 40여 개의 여러 역사서에
"동이족 구려사람"이라고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몽족(묘족)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4,700년 전 고조선까지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분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전쟁의 신"이라 불리고,
중국에서는 "무패의 신"으로 불리는 "치우천황"입니다.
"치우"는 지금으로부터 약 4,700년 전 고조선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입니다. 최초로 쇠를 녹여서 창, 칼, 활 등 무기를 만든 무기의 시조이자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전쟁의 신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헌원은 치우천황과 만리장성 북쪽에서 10년간 73회 전쟁을 했는데 치우천황이 항상 이겨서 중국에서는 무패의 군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치우천황은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도깨비 방패를 든 부대를 이끌며 전쟁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도깨비 부대가 항상 이겼기 때문에 치우천황은 "군신"으로서 왕도깨비의 상징이 되었으며 도깨비는 항상 귀신과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어왔습니다.
중국 중칭시 펑수이현 묘족 자치구에는 "치우 구려서(蚩尤九黎城)"이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동이족"임을 나타내는 현판이 딱 걸려 있습니다. "견이문"과 "치우 구려서"이 그것입니다. 견이는 동이의 9개 족 중에 하나입니다. 구려는 동이의 9개의 겨레를 이야기합니다.
이 구려가 변해서 고구려-고려-코리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오래된 역사책인 서경, 사기집해, 여씨춘추, 중국민족사에 하나 같이 구려의 임금을 "치우(蚩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치우는 당시 강력한 부락과 부대를 이끌며 중국의 중원을 위협하며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이끄는 부족과 맞설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의 황제와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탁록대전이라 부르는 마지막 전투에서 치우가 이끄는 세력은 참패를 했고. 치우는 목이 잘리는 참수를 당합니다.
전쟁에 패한 묘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남쪽으로 쫓기듯 내려와 지금의 "구이저우(귀주)"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정착을 하였습니다.
동이족이 지금 묘족(몽족)들입니다.
중국 묘족들은 보통 음력 10월을 묘년이라고 해서 축제를 하는데 추수가 끝나고 이 기간은 치우천황을 기리며, 우리의 추석처럼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몽족(묘족) 사람들에게 치우는 위대한 영웅으로 여겨지며, 오늘날까지도 제사를 지내며 그를 기리는 제사를 성대하게 치릅니다.
묘족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치우신과 조상들이 이곳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이곳에 땅이 생겼고 농사를 지으며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묘족들이 치우천황 제사를 지낼 때 그를 얼마나 숭배하는지 그 정성과 스케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 묘족은 주로 중국의 구이저우(귀주) 성과 베트남, 태국, 라오스, 미얀마에 거주하고 있으며, 묘족 마을은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도 30만 명의 몽족(묘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많은 묘족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미국까지 갔을까요?
이제 그 사실을 알아보겠습니다.
몽족(묘족)이 미국에 거주하까지 두 번의 이주 과정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1단계: 동남아시아로의 이주
몽족(묘족)은 원래 중국에 모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여 년 전, 묘족의 한 분파인 "허몽(Hmong)"족의 일부가 중국 광시(강서) 성과 윈난성에서 출발해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이주했습니다.
이제 라오스에서 왜 묘족 보다 몽족이라 불리는 걸 선호하는지 그 해답이 나왔습니다.
라오스로 이주한 묘족의 한 분파가 "허몽"족이기 때문입니다.
"허몽"족이 고향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중국의 불안정한 정세와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과 혼란을 피해 이들은 더 안전한 지역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동남아시아의 깊은 산속에서 생활하며 정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전쟁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2단계: 베트남 전쟁과 미국으로의 이주
1960~70년대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은 동남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라오스에 거주하던 몽족들은 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옆나라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미군으로부터 엄청난 폭탄세례를 받았습니다. 베트콩의 군정하에 있던 라오스는 보급품을 지원하고 캄보디아는 남베트남으로 가는 보급로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 때, 라오스 몽족(묘족)들은 반대로 베트남이 아닌 미국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며, 미군 조종사가 라오스에서 추락했을 때 구조하는 등 미국에 협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라오스에 정착하고 있을 때,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라오스정부에 반감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많은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땅을 빼앗기거나 자원이 강탈당하는 등 차별을 당하는 소수민족들이 많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라오스 정부는 미국을 도운 몽족(묘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대규모 학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몽족(묘족)들이 라오스를 떠나 이번엔 태국의 난민 캠프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때 미국은 과거 전쟁에서 자신들을 도운 몽족(묘족)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10만 명이 넘는 몽족(묘족)들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일부는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서방 국가로도 이주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에는 약 30만 명에 달하는 몽족 인구가 존재하게 되었고, 다른 서방국가에도 1만 명이 넘는 몽족(묘족)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몽족들은 원래 중국 묘족의 한 갈래였기 때문에, 중국 묘족과 같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몽족들은 초기에는 영어가 서툴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언어를 배우고 사업을 시작하며 미국 사회에 적응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몽족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묘족이 중국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들은 전쟁의 혼란을 피해 중국 → 동남아 →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세계 곳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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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 묘족(먀오족, 몽족) 전통복
중국 소수민족 묘족 전통복'묘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묘족의 인구는 약 1천150만 명에서 1천20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중국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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